Review/도서

[도서 리뷰] 빅매직

라니체 2023. 4. 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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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베스트셀러 소설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기계발서 "빅매직" 독서후기를 남기고자 한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인 이연님이 영상에서 강력하게 추천을 해주셔서 호기심에 한번 보게 되었다.

 

 

"빅매직"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창조적 영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책의 목차는 "용기", "매혹", "허락", "지속", "신뢰", "신성" 으로 구성되며, 이는 저자가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핵심요소들을 정의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왜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가 궁금할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거나 창작자일 필요는 없지 않으니까...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었으며, 삶에서의 다양한 방향중에 가장 경이롭고 재미있는 방향이 바로 이 창조적인 삶인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는 주옥같은 문장들도 많이있고, 작가 스스로 진심을 다해 솔직한 마음으로 그것이 내포하는 철학들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어떤 삶의 현인에게서 인생에 대한 직강을 듣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우연찮게도 요즘에 많이 읽고 있는 헤르만헤세의 저서와 이 책의 연결고리가 많이 보였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싯다르타"가 자아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고 삶의 방향에 대해 물음표를 던졌다면,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매직"은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으로 구성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의 욕망에 대한 불교적 표현 또한 "빅매직"에서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될수 있도록 표현된 문장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이 책 "빅매직"은 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원래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하나 구매해서 틈틈이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삶에 대한 용기와 그 온전한 하나의 방향성을 굳건하게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경험에 기반한 목소리로 말이다.

 

 

저자는 16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글을 쓰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나름의 의식을 치른뒤 (독특하게도 자기 나름의 촛불의식같은걸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적어도 30분은 글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예술(즉, 글쓰기)이 자신의 삶을 부양할 보장이 없다는것을 일찌감치 알았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글쓰기가 자기를 부양하는것이 아닌, 자신이 글쓰기를 부양하기로 결심한다. 저자는 뉴욕대 정치학과를 졸업한뒤, 글쓰기가 아닌 일들 (바텐더 등의 아르바이트)을 하며 자신을 부양하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부양하는 예술의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그냥 계속 지속하였다. 그녀는 어쩌면 죽을때까지 이 예술이 자신을 부양할정도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할지언정 그 예술활동을 지속하기로 맹세한다. (사실 그것은 16살때부터 이어져 오던 맹세였다.)

 

 

한편, 그녀는 그녀에게 정말 가끔씩 찾아올 행운을 발로 차버리지 않을 그런 좋은 마음가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호기심과 일의 끝맺음이었다. 그녀는 세상의 사소한 일에도 호기심을 가지며 가벼운 마음으로 경쾌하게 살아갔으며, 그것이 결론적으로는 온갖 가능성과 행운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거나 엉성하게 마무리될 지언정 모든 시작한 일을 어떻게든 끝을 내었다. 그런 성공의 습관이 결국엔 예술이 그녀의 삶을 부양할 수 있는 그런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창조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그 나름의 고통을 가지고 있으며 불안하다. 창작의 과정은 쉽지 않으며,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반짝거리며 변덕스러운 창조적 영감이 언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지는 불확실하며, 그렇게 창조를 해내어 결국 세상에 새로운것을 내놓지만 그것이 환영받지 못할까 두렵다. 하지만 이것은 예술을 하거나 창조를 해내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겪는 과정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을 하는 것 그 자체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혹여나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그 창조적 활동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것을 뜻하며, 다른 일을 찾아봐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런 고통스러우며 보상 또한 불확실한 창조적 활동을 하는 이유를 저자는 딱 간단 명료하게 말해준다. "재미있으니까"

 

 

나는 대학원생때, 창작의 고통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특히, 박사과정을 잠깐 했을 당시에는 나의 창작물인 논문이 나 자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이 논문에 이렇게 시간을 들였는데 혹여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떡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함이 고조에 이르자 나는 결국 박사과정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그 창작의 과정 그 자체가 행복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 것같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 선택을 그렇게까지 후회하는건 아니지만, 그때 만약 이 책을 만났다면 조금은 덜 스트레스를 받고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뭐 아무튼 지나간건 지나간것이고 앞으로 나의 마음가짐이 성숙해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책에는 또한 창조적 활동에 대한 재미난 표현도 있었는데 대략 이런 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당신이 일말의 창조적인 활동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당신은 결국 소파를 다 갉아먹어버리고 말것이다"

도대체 그럼 그 긴 일생의 시간동안 무얼하며 그 심심함을 달랠것인가 하는데에 대한 비유로 보인다.

 

 

사실 사람마다 삶에 가지는 가치관은 다들 다르기에, 위 표현을 모든 사람의 경우로 일반화하는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돈이나 재산, 명예"에 가장 큰 가치를 둘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외모나 아름다움"에, 또 어떤 사람은 "지적 추구나 진리 탐구"에 또 어떤 사람은 "예술적 탐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과 관점에 따라 각자의 몰입과 시간을 서로 다른데 집중하며 각자의 일생을 자기 나름대로 알차게 보낼것이다. 다만, 이 가치관들에 대해서는 감히 차등을 두기 어려우며 내가 가장 마음이 끌리는 것을 선택하여 살아갈 뿐이다. 이 중에서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창조적인 활동 그 자체에 가장 큰 가치를 둔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여러가지 삶의 방식 중에 엘리자베스 길버트 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삶의 방식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으며 나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예술가의 삶"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용기를 얻으며 어떻게 지속할수 있을지 이책은 정말로 많은 힌트를 주었다. 나는 이 책을 따로 구매하여 간직할 생각이다. 그리고 방황하거나 기운이 없을때마다 두고두고 보면서 나 자신을 다독이는 영혼의 친구이자 선생님으로 곁에둘 생각이다. (지금까지 본 자기계발서중에 제일 좋았다)

 

 

아래에는 그 주옥같은 문장들 중 일부를 필사하였다.

 

@인상깊은 문장들 :

당신의 두려움은 언제나 당신의 창조성을 도화선으로 삼아 발현될 것이다.

창조성은 당신을 어떤 불확실한 결과가 뒤따르는 영역으로 이끌고, 과연 당신이 그곳에 발을 들여도 될지를 묻는데, 당신의 두려움은 이 불확실한 결과라는 상황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은 아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해결할 필요가 있는 일이기는 하다.

 

 

두려움이 곁에서 함께 행진해주지 않는 이상 창조성은 단 한발짝도 저 혼자 걸음을 떼지 못한다는 것이 둘의 깊은 관계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다.

 

 

당신의 삶은 짧디짧고 진귀한 데다 놀랍도록 멋지고 기적적이므로, 당신은 잠깐 이 땅위를 스쳐 가는 지금 이 순간 동안 정말 흥미로운 일들을 겪어보고 만들어 보기를 원할테니, 나는 당신이 자신을 위해 그런 것들을 원하고 있음을 안다.

 

 

미리 예측하기가 불가능한 실제 결과가 산출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창조의 여정을 돌파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당신은 성공이나 실패 여부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길에 얼마나 헌신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를 측정해 볼 수 있다.

 

 

당신은 추구하는 것들을 통해 생계에 보탬이 되는 비용을 직접 벌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반드시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나날이 다했을 때, 당신을 그처럼 매력적이고 흥미롭고 열정적인 존재가 되도록 축복해 준 창조성에게 감사를 돌릴수 있다.

 

 

그 착상과 나와의 특별한 계약을 체결하기로 동의한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일할 것이다. 말하자면 굳건한 합의의 악수를 나눈 셈이다.

 

 

어쨌든 우리 가족 사이에서 통하는 황금률은 이것이다. 만약 네가 스스로 번 돈으로 먹고 살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네 인생으로 하고 싶은 무엇을 하든 네 자유라는 것.

 

 

또한 글쓰기더러 절대 나를 먹여 살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오히려 내가 항상 내 글쓰기를 먹여 살리고 지원하며 살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 전까지 누구든 기존의 것들을 모방한다.

 

 

너무 늦은 때라는 건 절대 없다.

 

 

창작의 고집스러운 기쁨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단한 표현은 바로 그 믿음의 감내였다.

 

 

그 실망과 좌절을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그 자체가 창조적인 사람에게 배당된 일의 일부라는 생각을 늘 떠올린다. 만약 당신이 어느 분야건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나에게는 당신이 자기 좌절감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가 곧 당신에게 주어진 예술 작업의 본질적인 측면으로 보인다.

 

 

창작에 따르는 모든 단계들 내내 당신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다 잡을수 있느냐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일로 주어지는 셈이다.

 

 

삶의 목적을 찾아내는 비결은 바로 다음 질문에 한치의 거짓 없이 정직하게 대답하는데 달려있다고 한다.

"이 세상의 역겹고 고약한 샌드위치들 중 당신이 그나마 가장 바라는 맛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척도에 부합하는 세속적인 성공을 어느정도 보장받지 않으면, 그 무엇이든 그것을 위해 그렇게까지 힘겹게 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 인생을 살면서 뭔가 해 볼 일을 찾아야 한다고, 거실의 소파를 와작와작 뜯어먹지 않도록 막아줄 뭔가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을 삼든 삼지 않든, 우리 모두는 속세의 일상을 넘어서 현세에서 우리가 고정적이고 제한적으로 속해 있는 사회적 역할들(어머니, 고용인, 이웃, 형제, 상사 등)로 부터 잠시 놓여나는 활동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잠시 우리 자신에 대한 것들을 잊게 도와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당신에게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 무엇이든 추구하라.

 

 

끝낸 것이 잘한 것보다 낫다.

 

 

일을 하려는 나의 욕구 (나의 창조성과 가능한 칠밀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맞물리며 교류하고 싶은 욕구) 는 그 어떤 수단을 쓰든 고통에 맞서 싸우기 위한, 그리고 가능한 최대한으로 온당하고 건강하며 안정적인 나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가장 강력한 개인 장려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