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도서

[도서 리뷰] 싯다르타

라니체 2023. 6. 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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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어

그것의 후속작 격으로 생각할수있는 소설 "싯다르타"를 빠른 시간내에 또 다읽게 되었다.

내가 두권밖에 안읽었지만 느끼는 헤르만헤세 책의 특징은 처음에는 그 특유의 고상한 언어표현과

감정의 섬세한 묘사로 도입부가 읽기 힘들지만, 그것만 넘어서면 금방 재미있는 스토리들이 진행되어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데미안에 이어 싯다르타도 어려운 소설이었지만 그래도 흥미진진하고 몰입감있게 쭈욱 읽게 되었다.

 

대략적 줄거리:

싯다르타라는 소년과 고빈다라는 소년은 인도의 높은 계급 집안의 자제였다. 그 중에 싯다르타는 특히 외모가 출중했으며, 학식도 뛰어나 젊은 소년이지만 사람들의 기대와 선망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내심 계속 인생에 있어서 불만족스러움을 느꼈으며 그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채우는 방법을 찾고자 사문이 되게 된다. 그리고 친한 친구였던 고빈다 역시 싯다르타를 따라 사문의 길을 걷는다. 둘은 그렇게 몇년정도 수행의 길을 걷는데, 싯다르타는 계속해서 그 갈증이 채워지지 않음을 느꼈고 마침 고타마라는 스님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고빈다와 함께 고타마를 만나러 떠난다. 고타마를 만난 싯다르타는 그 완성자의 모습을 넋을 놓아 바라본다. 존경과 전율의 감정을 느낀 싯다르타는 고타마처럼 되기 위해서는 고타마의 가르침을 받는것이 아니라, 고타마가 그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 그 체험 내지 경험을 해야한다고 느끼고, 고타마의 제자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다. 한편, 고빈다는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로 하고 싯다르타와 헤어지게 된다. 싯다르타는 이제 자신이 잘 할수있는 유일한 세가지 일인 "기다림", "사색", "단식"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싯다르타는 강을 건너 사람들이 많이 사는 어떤 도시로 가게 되는데 이것이 싯다르타가 "정신"의 영역에서 "감각"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싯다르타는 처음으로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성욕을 강렬하게 느끼게되는데, 이 욕구를 가까스로 참게 되었으나, 잇따라 소설속 최고의 미인으로 묘사되는 카말라를 우연히 보게되고 그 여인에게서 사랑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수염을 깎고, 머리를 정리하고 옷을 나름 단정히 한뒤 다짜고짜 그 여인을 찾아간다. 카말라는 처음에는 잘하는것이 "기다림", "사색", "단식" 뿐이라고 말하는 싯다르타를 무시했으나 점점 그 매력에 빠지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카말라는 싯다르타가 글을 쓸줄 안다는걸 알게되고 거상인 카마스바미에게 소개해주고, 명석하고 욕심이 없었던 싯다르타는 카마스바미에게 배운지 얼마 안되어 바로 큰 돈을 모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 "사색", "단식"의 힘이다) 그러다가 세속적인 욕망이 저절로 싯다르타의 마음에 새겨들게 되고, 싯다르타는 머지않아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쾌락에 빠져살게 된다. 그리고 이 욕망의 끝이 없음에 싯다르타는 점점 파괴적인 삶을 살게 된다. 머리에 흰머리가 히끗히끗 날 무렵, 싯다르타는 무언가 잘못된것을 느끼고, 자신의 집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강쪽으로 가서 자살하려한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 강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옴을 느꼈고, "어리석었고 너무나 혐오스러웠던 자신을 기꺼이 용서하는것이 진정한 자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임을, 좀 더 완성자로 성장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싯다르타가 "정신"의 세계에서 "감각"의 세계로 갈 수 있게 강을 건네 주었던 뱃사공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뱃사공의 이름은 바수데바인데, 바수데바는 싯다르타의 말년에 싯다르타가 완성자의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바수데바는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하며, 싯다르타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준다. 그러던 중 싯다르타의 전 연인이었던 카말라가 성인 고타마를 만나기 위해 강을 건너려하다가 싯다르타와 재회하게 되지만, 독사에 물려 죽게된다. 한편, 카말라와 싯다르타 사이에는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그 아들은 가난뱅이가 되버린 싯다르타를 따르지 않으려 하며, 싯다르타는 이로인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것또한 삶의 과정일 뿐이며, 긍정과 부정, 삶과 죽음은 모두 단일하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어 좀 더 완성자의 길에 가까워진다. 소설의 마지막부에는 뱃사공 싯다르타와 고승이 된 고빈다는 재회하는데, 고빈다가 이미 완성자가 된 싯다르타에게 그 지혜의 힌트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자신의 이마에 입맞춤을 한번 해보라 하며,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자 싯다르타의 얼굴에 삼라만상의 삶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 고타마와 같은 완성자의 미소를 지음을 보고 고개를 땅에 닿을정도로 숙여 인사하고 떠난다.

 

 

느끼는 점:

줄거리를 간추린다고 썼는데도 상당히 길어졌다. 그만큼 스토리는 정말로 탄탄하다. 싯다르타의 삶의 여정이 사문의 길에서 바로 성인이 되었을 거라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세속적인 삶으로 빠져든 스토리가 상당히 길게 진행되었고 그로 인해 좀 더 성인이 되기 전 인간적인 모습을 마음껏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으며, 싯다르타에게 있어서 그 세속적인 경험은 완성자가 되기 위해 필연적인 과정이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삶은 선과 악, 긍정과 부정, 기쁨과 고통 둘이 항상 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삶의 양면성을 모두 경험한 싯다르타는 말년에 우주 또는 브라만과 한 몸이 될 수 있었고, 자기 실현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소설이 온전히 이해되는것은 아니지만, 데미안에서와 비슷한 부분은 많이 느꼈다. 싯다르타에서도 데미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새"가 자주 나왔으며, 데미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본연의 또는 자기 영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새"였다. 나라는 존재는 무아의 존재이며, 그 본연의 목소리에 집중하는것이다. (사실 적어놓고도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어렴풋이만 이해될뿐)

 

카말라는 싯다르타가 집과 재산을 놔두고 어딘가로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이 키우던 "신비한 새"를 새장에서 풀어주었다. 즉, 세속적인 욕망이나 쾌락에 갇혀있었던 싯다르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자기 본연의 신성한 영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비한 새"를 풀어줌으로써 싯다르타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것을 암시해주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헤르만헤세가 어떻게 이렇게 심오한 소설을 썼는지, 그리고 불교적인 정신을 어떻게 이렇게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냈는지가 궁금해서 헤르만헤세에 대해 좀 조사를 해봤다. 싯다르타는 1877년생인 헤르만헤세가 1922년에 출판했는데 나이로 치면 마흔 중반정도의 나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전에 읽었던 소설인 데미안은 1919년에 나왔고, 이는 싯다르타보다 3년 전에 나온것이다.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썼을 무렵 헤르만 헤세는 심각한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거 같다. 집안에서 아내가 정신분열 증세가 있었으며, 셋째아들에게 큰 질병이 있었기 때문인거 같은데, 이로 인해 헤르만 헤세는 구스타프 융에게 정신 치료를 받기에 이른다. 한편, 데미안과 싯다르타는 그런 헤르만 헤세가 삶의 중요한 가치 또는 본연의 나에 대한 깊은 탐구와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당시 1차 세계대전)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다는 같은 노선을 타고 있었다. 데미안은 사실 헤르멘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출간하게 되었는데 유명세를 타자 문체가 분석되면서 헤르만헤세인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는 당시에 자기 내면에서 심각한 방황을 하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고자 자신의 새로운 페르소나인 "에밀 싱클레어"를 만들어 목소리를 냈던 것인데 "에밀 싱클레어"가 "헤르만 헤세"였다는 사실이 탄로나게 되자, 또다시 창작에 고난을 겪게된거같다. 어떻게 보면 예명의 본 주인이 밝혀진 사소한 해프닝일수도 있는데, 예술가에게 있어 이런 해프닝은 그 예민한 창작과정에 있어서 큰 충격을 주는가보다. 아무튼 이러한 것도 있고, 헤르만 헤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체험이 부족해서 더이상 이야기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하듯이 그 완성자로써의 경험 내지는 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소설 싯다르타의 창작이 몇년간 멈추었었고, 정말로 기이하게도 구스타프 융의 정신치료를 계속 받던 헤르만 헤세는 그 경험할 수 없었던 체험을 하게 되고 마침내 소설 싯다르타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첨언하자면, 헤르만헤세는 젊었을때부터 인도와 중국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싯다르타를 썼었을 당시에는 인도의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 등과 같은 경전과 중국의 "논어", "도덕경" 등을 많이 참고하였다고 한다.

 

소설 싯다르타에서는 이런 의미의 문장도 나온다.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 지혜의 의미가 변질된다"

그 만큼 말이나 언어라는 것은 영혼 내지는 지혜에 비하면 한없이 서툴며, 그 예민한 영혼의 표현을 언어로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말에 극히 공감을 하는 편이다. 정말 예민하고 섬세한 어떤 추상적(또는 영혼적) 개념을 말로 전달할때 그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듯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싯다르타는 세속적 쾌락을 다 겪은 후에 성자가 되었고, 친구인 고빈다는 고타마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끝내 성자가 되지는 못한것처럼 소설속에서는 나온다. 싯다르타는 사문이 되어 "정신의 극한"까지 가보기도 하고 부자가 되어 "감각의 극한"까지 가보기도 한다음에 결국에는 이 두가지가 다 같이 있는게 삶 그 자체다 라는것을 깨닫는다. 싯다르타는 고타마를 만났을때 결심했었던것처럼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자기가 그 깨닫는 계기가 되는 체험을 하고야 만것이다. 여기서 조금 속된 말을 하자면, 싯다르타는 결국 살거 다 살아봤으니까 이제 더이상 욕심도 나지 않고 그러니까 성자가 되기 쉬웠던게 아닐까하고... 그에 반면에 고빈다는 평생을 성자의 가르침속에서 자신만의 고뇌와 구도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 결과 우물 안 개구리처럼 되어버린게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든다.

 

결국엔 자신의 삶을 살 때, 누군가의 가르침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기 신념과 마음 그대로 살아보고 스스로 깨닫는게 더 크고 근본적인 성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책은 그것의 시행착오를 되도록 줄여주는 역할은 하겠으니 독서는 확실히 역할이 있을거 같다. 나 역시도 싯다르타를 통해 삶에 대한 고뇌에 가득찼던 한 소년의 한 일생 일대기를 단 한권의 책으로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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